생애
초기
290년 사마염이 붕어하기 직전에 예장왕(豫章王)에 봉해졌고, 307년 이복형 혜제 사마충이 독살당하자 황위에 올랐다. 그러나 311년 흉노에 의해 세워진 한나라의 열종 소무제 유총에 의해 사로잡혔고 313년 처형되었다.
전조에서의 삶
사마치는 사로잡힌 이후에도 전조(당시 한)의 수도에서 1년 반 동안 굴욕적인 삶을 살았다. 312년 유총에 의해 회계공(會稽公)에 봉해졌다. 유총은 한 연회에 사마치를 초대한 이후에, 사마치가 예장왕이던 시절에 서로 만났던 일에 대해 평했다.
"경이 예장왕(豫章王)이던 때, 짐은 왕무자(王武子, 왕제王濟)와 함께 당신을 뵌 적이 있습니다. 무자는 짐을 경에게 보여줬고, 경은 "당신의 명성을 들은지 오래되었소."라고 했지요. 그리곤 경은 손수 작곡한 악부가(樂府歌)를 짐에게 보여주었고, 짐에게 "그대는 사부(辭賦)를 잘 듣는다고 들었으니 시험 삼아 한 번 보여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짐은 때때로 무자와 함께 《성덕송(盛德頌)》을 지었고, 경이 잘한다고 칭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또한 경은 짐을 끌고 황당에 가서 할을 쏘았고, 짐은 12주를 얻었고(열두 번 명중), 경과 무자는 9주를 얻었으며(아홉 번씩 명중), 경은 짐에게 뽕나무 활과 은 벼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제(사마치)가 말하였다.
"신이 어떻게 그것을 잊겠습니까? 다만 후회스러운 것은 그때 용안을 미처 몰라뵈었다는 것입니다."
유총이 이에 물었다.
"경의 집안에서 일족끼리 살육을 벌인 것이 왜 그렇게 심하였는지요?"
제는 대답하였다.
"그건 사람의 의지가 아니고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대한(大漢)은 하늘에 응하여 가호를 받으려는 참이었기에, 폐하에 의해 스스로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신의 집안이 무제(武帝, 유총)의 업을 받들어 구족이 화목했었다면, 어떻게 폐하께서 황제가 되었겠습니까?"
이에 해가 저물 때까지 있다가 나왔으며, 소유귀인(小劉貴人)을 제에게 내주면서 말했다.
"이 자는 명공의 후손이나 이제 특별히 처로 점찍어 두었으니, 경은 잘 맞이하도록 하시오."
유씨를 회계국부인(會稽國夫人)으로 배수하였다.
죽음
313년, 황실의 새해 맞이 행사에서 유총은 사마치에게 고급 관리용 포도주를 접대하도록 했다. 서진의 관리였던 유민(庾珉)과 왕준(王雋)은 이런 굴욕적인 광경을 보고 감정이 복받쳐올라 크게 울고 말았다.
이것이 유총의 화를 돋워, 유민과 왕준은 물론 서진 시대의 관리들에게 모두 반역 및 서진 장수 유곤(劉琨)에 대한 내통 혐의를 뒤집어씌워 사형에 처했으며, 사마치도 독살당하였다.
가족
- 조부: 태조 문황제 사마소(太祖 文皇帝 司馬昭)
- 조모: 문명황후 왕씨 왕원희(文明皇后 王氏 王元姫)
- 부황: 세조 무황제 사마염(世祖 武皇帝 司馬炎)
- 모후: 효회태후 왕씨 왕원희(曉懷太后 王氏 王媛姬)
- 황후(정후): 회황후 양씨 양난벽(懷皇后 梁氏 梁蘭璧)
- 제 1황자: 태자 사마전(太子 司馬詮)[생모미상]
- 이복 형: 서진 혜제 사마충(西晋 惠帝 司馬衷)
- 황후(정후): 회황후 양씨 양난벽(懷皇后 梁氏 梁蘭璧)
